출처: https://kr.investing.com/news/economy/article-637971
LG화학 (KS:051910) RO필터 사업부 직원들이 테스트를 마친 수처리 필터를 살펴보고 있다. LG화학 제공
지난 13일 충북 청주 LG화학 역삼투압(RO: reverse osmosis) 필터 공장. 35만㎡ 규모 공장 내 설비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 공장에선 바닷물을 걸러 염분이 없는 ‘담수’로 만들어 주는 RO 필터를 생산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등 중동 국가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공장 가동률은 최근 100%에 육박하고 있다. 2015년 공장 설립 이후 최고치다. 약 150만 명이 사용할 물을 걸러낼 수 있는 규모의 RO 필터를 생산 중이다. 형훈 LG화학 RO필터 사업담당은 “올 들어 RO 필터 가격을 30%가량 올렸는데도 주문이 급증하고 있다”며 “생산이 달려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해수 담수화 프로젝트 ‘봇물’
RO 필터 판매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해수 담수화 프로젝트가 많이 진행되고 있어서다. 중동에서 특히 수요가 많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중동 국가는 과거 기름 팔아 번 돈으로 해수 담수화 플랜트를 많이 지었다. 두바이, 아부다비 등의 대도시를 글로벌 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물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다단증발방식(MSF), 다단효용방식(MED)의 플랜트를 주로 지었다. 두 방식 모두 바닷물을 끓여 증발시키는 과정을 거쳐 담수를 생산한다. 이런 방식은 치명적 단점이 있다. 에너지를 많이 쓰고 대기 오염물질도 다량 발생한다는 것이다.
중동 국가들은 2000년대 초반 지어진 해수 담수화 플랜트의 내구연한(약 20년)이 다하자 최근 RO 필터 방식으로 대대적인 전환 작업에 나섰다. RO 필터는 높은 압력을 가해 물 분자를 농도가 낮은 쪽으로 통과시켜 정화하는데, 담수 생산비용이 증발식에 비해 낮고 환경 오염도 적다.
최근에는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도 RO 필터 구매를 늘리고 있다. 생활용뿐 아니라 산업용에 필요한 담수도 부족해서다. 지난해 LG화학은 중동뿐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로부터 대규모 RO 필터를 수주했다.
국내에서도 RO 필터 수요가 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충남 서산 대산산업단지에 필요한 용수 확보를 위해 해수 담수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국내 첫 공공 주도 해수 담수화 사업이다. 2017년 가뭄으로 물 공급에 차질을 빚은 뒤 추진됐다.
업계에선 제조 공정에서 초순수가 필요한 반도체, 화학, 배터리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도 RO 필터 수요가 급격히 늘 것으로 예상한다. 글로벌 수처리 조사기관 GWI에 따르면 RO 필터 시장은 2020년 1조1626억원에서 2024년 1조5107억원으로 약 30% 커질 전망이다. ○사업 시작 5년 만에 본궤도 올라LG화학이 RO 필터 사업에 진출한 것은 2014년이다. 미국 ‘나노H2O’란 스타트업을 인수하면서다. 나노H2O의 RO 필터는 염분을 잘 제거하면서 담수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양산 경험이 없어 사업 초반 어려움을 겪었다. LG화학은 2015년 청주에 공장을 짓고 시험 생산을 거쳐 이듬해인 2016년 양산 설비를 들였다. 수율은 80%를 밑돌았다. 100개를 만들면 20개 넘는 불량품이 나왔다. 주문도 많지 않아 설비의 절반 이상을 놀렸다.
LG화학은 수율을 잡는 데 우선 집중했다. 공정 방식을 바꾸고 자동화 설비를 구축했다. 2019년 수율이 90%를 넘어서며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영업을 강화했다. 전략은 단순했다. 경쟁사 대비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팔았다. 제품력엔 자신이 있었다. 염분 제거율을 99.89%까지 높였다. 듀폰, 도레이 등 경쟁사(제거율 99.8%)를 압도했다.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고객사들은 LG화학 제품을 선호했다. 바닷물을 통과시키면 염화나트륨 분자 1만 개 중 단 11개만 남았다. 경쟁사 것은 20개가 남았다. 정수량이 많을수록 LG화학 필터의 강점은 더 부각됐다.
LG화학 RO 필터 매출은 2019년 1000억원을 처음 넘겼다. 올해 예상 매출은 1500억원에 이른다. 듀폰, 도레이 등과 함께 글로벌 ‘톱3’로 올라섰다.
형 담당은 “물 부족은 인류가 당면한 과제”라며 “10~20년 뒤 제2의 배터리 사업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