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의 열기가 뜨겁다. 10년 박스권을 넘어 2700포인트대에 오른 코스피의 3000선 돌파도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은 연말쯤이면 나오곤 하는 증권가의 덕담으로만 들리진 않는다. 코로나19 백신 보급 등의 영향으로 2021년 경제와 기업이익 사이클은 올해보다 확연히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역성장에서 내년에는 꽤 가파른 플러스 성장으로 반전될 가능성이 높고, 한국 상장사들의 기업이익도 올해 대비 30% 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감안해도 올해의 급등으로 내년에 기대되는 개선은 이미 주가에 반영돼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 코스피 상장사들의 당기순이익은 2017년 153조원이 사상 최대치였다. 내년에 예상되는 이익이 130조원 내외로 2017년 대비 15% 정도 적은데, 코스피는 이미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니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산 가격이 과하게 올랐다면 투자를 안 하는 것도 나름의 선택이지만,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자산 가격이 버블이라고 하더라도 그 거품이 얼마나 더 부풀어 오른 후 터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인 데다 무엇보다도 주요국의 정책이 계속해서 버블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금리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몇 해 전까지 재정위기에 시달리던 이들 국가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이 마이너스권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의 경기 부양적 통화정책이 강화되면서 금리가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잠재적 재정 부실국’의 금리도 마이너스인데, 코스피가 3000포인트에 오르는 일이 뭐가 대수인가 말이다. 지난주 사상 처음으로 2만달러를 넘어선 비트코인의 급등도 늘어난 유동성의 풍선효과가 아닐 수 없다. 경기 회복에 자신이 없어 내놓고 있는 여러 정책이 ‘경기’보다 ‘자산시장’을 부양하고 있다.
내년에도 주식시장의 향방은 경기가 아닌 금리에 달려있다고 본다. 금리가 상승하면 주식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 금리는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오른다. 인플레이션이 나쁜 것은 아니다. 완만한 물가 상승은 경제의 활력을 보여주는 증표이다. 다만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것은 경제의 과열 징후로 금리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파월 의장이 계속 공언하고 있는 것처럼 중앙은행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긴축을 단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물가가 상승하면 중앙은행이 통제하기 힘든 장기금리는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빠르게 상승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생기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글로벌 경제의 생산능력은 과잉이고,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국면에서의 실업 증가와 선진국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수요는 정체되고 있어 구조적 물가 상승이 어렵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제는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짙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의견을 받아들이더라도 2021년에는 국지적이나마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억눌린 수요가 경제가 정상화되면서 폭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순환적 경기 회복 가능성은 그 자체가 물가를 올리는 요인이다. 특히 소위 보복소비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가계저축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저축은 소득에서 소비를 제한 금액이다. 2015~2019년 미국의 가계저축은 연간 1조1000억~1조4000억달러 범위에서 증가했지만, 2020년에는 10월까지만 5조4000억달러가 늘어났다. 팬데믹 국면에서 없어진 일자리가 아직도 1000만개 정도 되지만, 정부의 보조금 지급 규모가 컸고 이동의 제약으로 제대로 소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식 투자자의 관점에서 보면 2021년에는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너무 과하지 않은 게 좋다. 자생적으로도 인플레이션이 생길 수 있는 환경에서 정책적 자극이 강하게 더해지면 물가가 빠르게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이 그랬다. 당시 미국 경제는 순조롭게 팽창하고 있었는데 2017년 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시행한 파격적 감세 조치로 경기가 과하게 달아올랐다. 인플레이션 부담은 가중됐고, 장기금리가 빠르게 치솟으면서 주식시장도 조정을 받았다.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의 불균형을 생각하면 정부의 부양책이 여전히 절실하다고 보지만 주식시장에서는 평온한 저금리 환경을 흔드는 이런 상황이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글로벌 증시는 2008년 이후 강세장을 이어오고 있는데 2011년과 2018년에 일시적인 조정을 받았다. 모두 인플레이션이 이슈로 대두됐던 시기였다. 자산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뒷배로 삼고 있는 주식시장에는 코로나보다 인플레이션에서 비롯되는 금리 상승이 더 두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