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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4일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서는 수많은 시민이 모여 밤새 촛불을 들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집회였다. 이는 톈안먼 시위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된 중국 본토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으로,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를 상징하는 장면처럼 여겨져왔다.
하지만 더 이상 홍콩에서도 이런 광경을 볼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중국이 지난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 등을 통해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4일 톈안먼 민주화 시위가 32주년을 맞지만 홍콩 당국은 코로나19를 이유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년째 빅토리아공원에서 열리는 추모 집회를 금지시켰다.
홍콩의 한 시민은 2일 톈안먼 사태를 다룬 잡지를 펼쳐 보이고 있다. 홍콩 | AFP·AP연합뉴스
보안당국은 홍콩보안법까지 거론하며 “불법 집회에 참가하면 처벌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홍콩 보안국은 지난달 29일 성명에서 “6월4일 허가되지 않은 집회에 참여하면 공안조례에 따라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며 “누구든 홍콩보안법을 비롯한 법률에 도전하면 법에 따라 엄중히 대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당국의 집회 불허 방침에도 1만여명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 불법 집회 혐의로 13명이 기소되는 등 파장도 작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빅토리아공원에서 촛불 시민을 보기 어렵게 됐다. 홍콩 당국은 공원 주변에 경찰 3000여명을 투입해 검문검색을 실시하기로 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보안법 시행 이후 전방위적 탄압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 1990년부터 매년 ‘6·4 추모 집회’를 주최해 온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도 몸을 낮추고 있다. 지련회는 집회 불허 방침이 나온 후 “전염병을 구실로 집회 참석 권리를 제한하고 6월4일을 애도하는 것을 막는 게 유감스럽지만 4일 집회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며 “시민들이 합법적이고 안전한 방법으로 적절한 장소에서 애도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련회는 2014년부터 톈안먼 시위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운영해 온 ‘6·4 기념관’도 무허가 시설이라는 당국의 압박에 따라 지난 2일 폐쇄했다.
톈안먼 사태 32주기를 이틀 앞둔 2일 6·4기념관이 문을 닫았다. 홍콩 | AFP·AP연합뉴스
이에 시민들은 시내 다른 장소나 집에서 촛불을 드는 등 톈안먼 시위를 기억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홍콩민의연구소가 지난 1일 내놓은 설문 결과를 보면 톈안먼 시위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47%로 지난해보다 13%포인트나 낮아졌다. ‘홍콩의 중국화’가 가속화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 당국은 민주진영 인사들을 대거 기소하고 공무원 등에게 충성서약을 받았으며, 올해는 친중세력에 유리한 방식으로 선거제도를 바꿨다. 홍콩말도 위협받고 있다. 홍콩 명보는 3일 중국 교육부가 ‘언어문자사업발전보고서’를 통해 번체자와 광둥어를 쓰는 홍콩에서 본토의 간체자와 중국 표준어인 보통화 교육을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톈안먼 시위는 1989년 6월4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모여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민들을 중국 당국이 유혈진압한 사건이다. SCMP는 “6월4일 빅토리아공원에 촛불이 밝혀지는 장면이 과거의 일이 돼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날 “톈안먼 희생자를 평화롭게 추모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